바보 온달과 느릅나무 한의약

 온달전(溫達傳)은 모두가 재미있게 읽어본 설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에 수록된 온달전은 고구려 평강왕(平岡王), 집이 가난하여 걸식을 하며 홀어머니를 봉양하는 바보 온달과 울보였던 평강왕의 딸이 결혼하는 로맨스로 왕실을 버리고 가난한 온달을 찾아가는 공주의 용기와 헌신적인 내조로 인하여 온달이 고구려의 장군이 되어 무공을 세우고, 신라에 빼앗긴 땅을 회복하고자 출전했다가 아차산성(阿且山城)에서 전사하는 이야기입니다.

 

 단순한 설화를 뛰어넘어 온달전에는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집니다. 일단 온달이라는 장군은 실제 인물임이 확인은 되지만,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묘청의 난과 같은 정변을 겪는, 귀족세력들에 의해 분열되고 혼란을 겪으면서 금나라와 송나라 사이에서 외교적 분쟁에 휘말리고 미약해진 왕권으로 인하여 정국이 불안정했던 당시의 고려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여 썼다는 해석이 존재합니다. 온달이 바보로 설정되어 있는 것은, 가식 없고 순진성을 내재하고 있는 인물로 그려져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충성을 강조한 장치라는 시각입니다.

 또 역사학계에서는 보잘것없던 하급 귀족이었던 온달이 후주와의 전쟁에서 공훈을 세워서 부마가 되었다고 봅니다. 전후 대형(大兄)의 벼슬을 받았는데 이는 신당서에 나타난 고구려 12관등 중 6등급의 해당하는 관직이므로, 대단한 전공을 세우고 상대적으로 낮은 직위를 받았다는 것은 온달이 하급 귀족이라는 유력한 증거라는 것입니다.

 등급은 낮았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평강왕의 총애를 받고 부마가 되자,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고구려의 고급 귀족들이 이를 "바보와 울보의 결혼"이라고 뒤에서 비꼬면서 바보 온달 설화가 생겨났을 것이라고 추정된다는 시각입니다.


 

 다양한 관점이 상존하는 온달전에, 한의학적 본초 지식이 그 시대상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온달전에는 평강공주와 온달이 처음 만나는 계기가 온달이 느릅나무 껍질을 산에서 캐서 내려오는 장면입니다. 옛 문헌에서는 남녀 간의 연정을 가지는 장소로 느릅나무가 자주 등장하곤 하는데, 온달전에서도 이러한 문학적 모티브가 쓰였다고 보입니다.

 느릅나무는 어디에 분포하고 있었는지를 파악해보면 온달전이 시작된 그 지역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당총관 설인귀가 임윤법사를 시켜 신라왕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기를 () 일조(一朝)에 크게 군사를 일으켜 수록 양면으로 싸우게 되니, 이 대 새외(塞外)의 초목은 꽃이 지고 유성(楡星; 楡關의 느릅열매)은 잎이 돋았습니다.’

 

 느릅나무 열매를 지칭하고 있는 유성을 주목해보면, 기사의 의미상으로 유성은 유관(楡關)유새(楡塞)로서 변방의 요새를 의미하는 것으로 하북성(河北省) 임유현(臨楡縣)의 동문인 산해관을 일컫습니다. 즉 중국의 변경지대에는 느릅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유성으로 기술된 느릅나무는 변방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의 사료의 내용으로 유추하자면 이 시기 느릅나무는 중국 만주 지역을 포함한 우리나라 중부 이북지역에서 주로 자생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 공주는 보물 팔찌 수십 개를 팔꿈치에 매고 궁궐을 나와 혼자 길을 가다가, 한 사람을 만나 온달의 집을 물어 그 집에 이르렀다. 맹인 노모가 있음을 보고 앞으로 가까이 가서 절하고 그 아들이 있는 곳을 물었다 () ‘내 자식은 굶주림을 참지 못하여 산으로 느릅나무 껍질을 벗기러 간지 오래인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소.’하였다. 공주가 그 집에서 나와 걸어서 산 밑에 이르러 온달이 느릅나무 껍질을 지고 오는 것을 보고, 공주가 속에 품은 바를 말하니.”

 

 ‘유성을 변방지대로 본다면, 온달이 느릅나무 껍질을 벗겨오는 산을 비추어 볼 때 온달이 살고 있는 곳은 고구려의 수도 평양이 아닌 한반도를 벗어난 지방으로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새롭게 주목해볼 사안은 온달의 모친입니다. 온달의 모친은 설화에서 언급하길 맹인이라고 합니다. 온달이 중앙 정계에서 밀려난 지역 세력임을 생각해 볼 때, 온달의 모친 역시 어떠한 귀족 집안 출신으로 간주할 수 있고 태생적인 맹인은 아니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아마도 후천적인 병을 얻어 시력에 이상이 생긴 것인데, 이는 온달의 가난한 환경으로 말미암아 영양부족으로 인한 증상 혹은 어떠한약물의 부작용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바로 느릅나무 껍질입니다.


 느릅나무 껍질을 한방에서는 유백피(楡白皮)라고 합니다. 맛은 달고 성질은 평하면서, 이수통림(利水通淋; 소변의 이뇨 작용을 촉진 및 부기를 가라앉힘), 소종(消腫; 항염증 작용)하는 작용이 있다고 언급합니다.

 하지만 유백피를 오래 복용할 시, 눈이 가렵고 침침해진 사례가 보고 된 바 있습니다. 또한 느릅나무를 달인 물을 복용한 후 급성 간염 및 급성신부전을 경험한 환자도 있습니다. 동의보감의 간허(肝虛)하면 희미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눈은 간이 밖으로 드러나는 곳이라는 점을 참조하면, 느릅나무의 부작용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아마도 온달의 모친은 중앙 정계에서 밀려난 스트레스로 의심되는 부인병 혹은 부종으로 고생하여 초기에는 느릅나무 껍질 달인 물을 장기 복용하였으나, 부작용으로 맹인이 되었다는 것이 유백피의 효능과 부작용으로 추론할 수 있는, 또 다른 온달전의 모습입니다.

 더 하나 덧붙여 생각해보면, 보통 상백피는 봄 또는 8~9월에 채취하는데 앞서 온달이 한반도 외 북부 지역(아마도 만주) 출신임을 감안하면 8월경에 상백피를 채취하러 산으로 들어갔다고 추리할 수 있습니다. 즉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의 로맨스는 8, 만주의 여름에서 시작된 셈입니다.


 

 오랜 시간 누적된 본초학적 지식이 설화의 기후 환경과 보건 환경을 가늠하게 하여, 설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한 재미있는 일례로 꼽을 수 있는 온달전과 느릅나무였습니다.


 

   참 고 문 헌

 

ㆍ《삼국사기, 김부식

ㆍ《本草綱目, 食療本草

ㆍ 노태돈. 고구려사 연구. 사계절, 1999.

ㆍ 서재석; 이경훈. 증례: 느릅나무 다린 물 복용 후 발생한 급성 간염과 급성신부전 1 . 전북의대논문집, 2000, 24.2: 197-201.

ㆍ 윤성민, et al. 폐암 환자에서 느릅나무 다린 물을복용 후 발생한 급성 독성 간염 및 신부전 2 . 대한내과학회지, 2003, 65.3: 826-831.

ㆍ 최선미. 민간요법 활용기반 구축사업 2012년 연차보고서. 한국한의학연구원. 2012:65-6

ㆍ 김영완, et al. 온달전 재고찰-약용식물로써 느릅나무. 한약정보연구회지, 2013, 1: 83-86.

ㆍ 한국한의학연구원 ( www.kiom.re.kr )


덧글

  • 채널 2nd™ 2014/11/10 03:18 #

    흥미로운 '추리'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평양은 아닐 것으로 생각했지만 ㅎㅎ

    (대체 평강 공주는 궁궐에서 나와서 얼마나 걸어서 -- 말타고? -- 온달을 만났을 수 있었을까요..??)
  • 키키 2014/11/11 00:52 #

    사랑의 힘이 아닐까요 (진지)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